돈에 끌려다니는 사람.

생각해보면 그렇다. 나는 대부분 이글루스를 내 비굴하고 쪼잡스럽고 더러운 생각들을 털어놓는 배출구 같은 역활로 사용해 왔었다. 한동안 아니, 상당히 오랜시간 동안 이글루스를 놓으면서 그런 욕구불만이 쌓였던걸지도 모른다.

뭐, 단지 술이 좀 들어가서 그런 것 일수도 있고.

나는 어려서부터 커오면서 주변 사람들 당연하다시피 받는 '용돈'의 개념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중학교 땐가? 친하게 지내던 친구로부터 용돈에 대한 개념을 듣기 전에 돈을 쓰는 녀석들은 다들, 소위 나처럼 준비물 비라던가 무슨무슨 참고서를 사는데 한 두푼 살짝살짝 꼼쳐서 써오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왔었는데...그런건 내게 있어서 굉장한 컬쳐쇼크였다.

그날 난 부모님께 이야기해서 달에 만원씩 용돈을 받기로했다. 응, 상당히 쪼잔한 금액이었지만 그나마도 두달...을 넘기지 못하고 용돈이란 존재는 흐지부지 사라졌다. 그 전부터도 그랬지만 사실상 그때부터 난 자기욕구를 거세하는 방법을 익혀온 것 같다. 무언가를 가지고 싶어도 그런걸 할 수 없도록, 조금이나마 가진 돈이 있으면 집 어딘가에 숨겨놓고 집을 나서면 뭔가를 미치도록 가지고 싶거나 먹고 싶어도 그럴수가 없게되고 그러다 보면 익숙해지는 거다.

당연하지만, 난 또래 아이들처럼 딱히 옷을 사거나 신발을 사거나 머리를 하거나 전자기기를 사거나 하는 둥 개인적으로 돈을 써본일이 없다. 부모님은 학비와 더불어 집안의 전기세라던가 차비 등등 생활에 필수적인 금액에 대한 지원은 모두 해주셧지만, 돌려서 말하면 딱 그것뿐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보자. 그 방법 밖에없었다. 개인적 용무로 돈이 써야할 때가 올 그 날을 위해 난 항상 준비물이나 참고서적을 마련할때 한푼 두푼 붙여서 그걸 챙겨놓고 필요할때 긴요히 쓰곤했다. 그나마도 죄책감이 들며 내 자신이 싫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학생에게 무슨 돈이 필요하냐는 가치관이 확고히 서 있었고, 실제로 돈을 받고자 부탁을 하면 명백히 아깝다는 태도를 취하곤 하셔서, 부모님께 돈을 구하는 일은 싫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아르바이트 라는 덕목으로 조금이나마 내가 직접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주변에 돈이 부족한 또래를 이해할 수 가 없었다. 무엇이든 간에 '욕구'를 가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충대충 부모님이 사다주시는 옷을 입고 아버지가 입던 속옷을 물려입고, 겨울일도 될라치면 사이즈도 맞지 않는 아버지의 점퍼를 입고다니면서도 난,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에 돈을 써야하는지 모르고 그냥 계속 쓸 일이 있을때를 위해 돈을 모아두기만 했다.

그래서, 돈이 부족할 일이 없었다. 돈을 가지고 싶어 급급해 하는 주변 아이들이 돈에 끌려다니는 녀석들 같아 요즘 대두가 되고 있는 루져 같아보였다.

그런데...

그게, 이제는 달라졌다.

물론, 지금도 똑같다. 딱히 내 돈을 써서 어디서 크게, 비싸게, 옷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번 돈을 왕창 쏟아부어서 가지고 싶은 전자기기를 마련하는 것도 아니고, 흔히들 남자들 세계에서 이야기하는 아가씨와 성관계를 하러 돈을 쓰는것도 아니지만.

지금 나는 돈에 끌려다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평소 한끼를 때우기 위해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먹는 나도,
그녀 앞에선 적어도 5000원을 호가하는 밥을 먹게 되었고.

집안에 있으면 아침 저녁을 해결하고 점심은 도시락으로 해결하느 나도
그녀를 만나면 세끼 아니면 최소 두끼를 돈을 내며 먹어야 했고,

어딘가를 가거나, 어딘가에 머무르거나, 뭘하고 놀거나, 뭘하고 있던간에,

결국 집 바깥 이라는 건 오로지 다 돈. 돈. 돈. 돈. 돈. 돈. 이다.

이야기를 듣는 가벼운 친구들은 흔히들 이야기 한다.

미친새끼라고.

부정을 하면서도 어쩌면 맞는 이야기다. 나의 그녀는 대전에 살고 난 서울에 산다. 나는 거의 주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대전에 내려가고 그럼 이모 할머니외엔 연고도 없는 곳에서 적으면 2일 길면 4일정도 체류하곤 한다.

그나마도 할머니껜 두명의 자녀가 있고 그런 곳에 찾아가 신세를 지긴 껄끄러워서 그녀의 친구의 남자친구(...)와 친해져서 이사를 도와주면서 종종 그 집에서 머물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눈치가 안 보일리도 없다. 그저 그렇지 않은 척 할 뿐이지. 그 외에는...어쩔 수 없이 찜질방을 찾아가곤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있던 그들은 이야기한다. 정말 잘도 사귀고 있다고.

그런건 상관없다. 난 그녀를 사랑하니까.

그런데. 비참한 건.

그러다보니 난 어느새 돈에 끌려다니는 사람.

내가 생각하던 루져가 되어 있었던거다.

깨닫고 보니 난 어느새 그깟 만원 남짓하는 열차비가 아까워서 철도 화장실에 숨어 대전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래, 가진 거 없는 주제에 자존심 하나만 불뚝 솓아있던 이 내가.

사랑 참 위대하기도 하지.

그리고 대전역 바로옆에서 걸려서 도주하다가 공익 너댓과 사투를 벌이고 난 후에 정신을 차려보니 그걸 깨닫고 있었다.

아, 난 돈에 끌려다니고 있구나.

자존심이고 뭐고 다 팽겨치고 돈이라는 족쇄한테 질질 끌려다니고 있구나.

...

그녀는 돈이 많다.

놀라울 정도로 많다.

어떻게 그리 많은지 모를 정도로 많다.

언제나 내가 돈을 많이 쓰는건 알지만 자기도 만만치 않게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한편으론...

10만원 남짓하는 찜질방 상품권을 선물하고, 몇만원을 호가하는 명품 양산을 새로사고, 몇십만원 하는 부츠를 사서 신고, 가끔 어떤 어떤 옷을 사입곤 하고, 불쑥불쑥 돈이 한참 깨질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고 또- 다녀오고, 큰 돈을 지니고 원없이 쇼핑을 하러 가보자고 이야기한다.

...

난 사방이 돈이라는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것 같은데...

그녀는 돈을 손에쥐고 재롱부리는 아이처럼 부리고 있다.

...

아마, 내가 컵라면으로 밖에서 한끼를 때우고 있을때에도
그녀는 내가 그녀를 만날때나 입에 데어보는 음식을 먹고 있을것이고,

내가 멍하니 비싸다는 생각을 하며 무언가를 보고 있을때에도
그녀는 맘에드는 그것을 사고 있을 것이다.

그놈의 돈때문에.

나는 나의 꿈의 진로를 바꾸기로 마음먹었지만.

물론, 나는 내 나름대로의 수입구조를 어떻게든 만들어 나가고 있지만.

한번 다녀올때마다, 정말 최소히 잡아 5만원 이상 깨져나가는 대전투어 사이사이 존재하는 기념일마다.
그녀는 최소한의 '무언가'를 기대하곤 한다.

...그러다보면.

가끔식 부모님이 없을때 난 부모님의 가방이나 옷을 뒤적거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그리고 그러때마다 자기혐오감에 구역질이 올라오려고 한다.

난...정말로 여자친구의 명품 핸드백을 위해 가지 신장을 팔았다는 이를 머저리 천치라고 비웃었지만.

사실 그의 마음은 얼마나 절박하고 성스러운 마음으로 가득차 있었을 것인가...

학생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고, 지갑에 만원만을 채우고 돌아다니는 나는 어떤 모임에도 끼여 쓰이는 돈이 아까워져 점점 인간관계가 소원해져 간다.

아무리 취직으로 나의 꿈의 진로를 수정했다고 해도, 미래를 생각해 이리저리 재는 사이 시간은 흘러가고 돈은 새어나간다. 당장 취직이 된다고 해도 첫 봉급이 나오는 그 한달까지 버텨내야 한다.

이런 속마음을 치졸하게 이야기 하고 싶지도 않건만, 그녀는 내일 하루 더 같이 있으면 안되겠냐고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좋아하니까. 물론 나도 같이 있고 싶다.

...돈만 있다면.

......

당장 지금, 내일도 대전을 내려가야 하지만.

나의 수중엔 고작 달랑 2만원이 들려있을 뿐이고.

이건 따지면 왕복비가 간신히 될 뿐이다.





by Astral | 2009/11/27 22:53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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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Astral at 2009/11/27 22:53
넋두리를 길게도 썻군...어휴
Commented by 아르카딘 at 2010/01/14 11:18
그러게 말이다.
Commented at 2010/09/0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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